Page 5 - 2019 한인총연합회 필리핀 한인 이주사 회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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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성인은 이곳 롤롬보이를 3차례 방문하고                         기와를 활용,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경당과 7궁방탑의 모습
            1년 이상을 공부하며 생활했다.

             김대건 신부가 마닐라에 온 것은 1839년도이다. 1837년, 열일곱의 나이로 신학 공부를 위해 용인에서 마
            카오까지 9,000리(약3,500km)의 길을 걸아 갔지만, 아편 수입과 판매 금지 문제로 인해 나라가 들썩이고
            있었으니 편안히 자리에 앉아 신학을 공부하기에는 좋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포르투갈 식민 정치에
            불만을 품은 청국인들이 민란을 일으켜서 정치 불안이 심해졌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때,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본부에서 칼르리 신부와 데플레슈 신부를 비롯해 신 학생 몇 명을
            필리핀으로 피신 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839년4월6일 마카오에서 출발한 스
            페인 배를 이용했는데, 필리핀 마닐라까지 2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마닐라의 대주교가 사목 방문을
            위해 출타중이었으니, 낯선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도미니크 수도원의 농장으로 자리를
            옮겨 생활하게 된다. 블라칸에서 1년 남짓 머물다가 다시 마카오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도미니코 수도회의
            사제들과 수사들은 매우 친절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몇 년 뒤 대만 가는 길
            에 다시 들려 열흘 정도 머물다 갔었다는 기록이 있다.




























           유해소 외부 모습                                             최양업 신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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